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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itgeist

'잘 죽어보세' vs. '잘 살아보세'

오늘은 약간은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만족과 불만족],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글입니다.
(아직 제 블로그가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신의 의견을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부담없이요.)


"어떻게 죽어야 할까?"

이상한가요?
다시 스스로 한번만 자문해봅시다.

"어이 OOO, 너 어떻게 죽을래?"

이상하지요?
우리는 언제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잘 살아보세~' 라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도그마(dogma)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TV를 켜면 항상 정말,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도 벌구요, 명예도 얻구요. 이런 것입니다. 이게 바로 웰빙 - Well Being - 아니겠습니다.
잘 살다. 웰~빙~.

그런데요 문제는,
그 웰빙이 설령 다른 사람을 짓밟아도 상관없다는 태도입니다.
일단 내가 잘 살고 봐야한다는 것이지요.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 '살아'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이르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후회할까요? 만족할까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요.
얼마 전 명을 달리하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말마따나
삶과 죽음은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생각보다 삶은 '거시기'한 것 같습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당장 제가 오늘 컴퓨터를 쓰다가 감전되어 죽을수도 있겠지요.
너무 현실감이 없나요? 하루에 평균 600여명이 교통사고나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지금 당장 길거리에 나가면, 차나 오토바이를 타나 사고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제는 '잘 죽어보세'라는 담론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굳이 영어로 하자면, Well-Dying이 되겠습니다.
Well Being + Well Dying = Better Life


기업에서 사내역량 훈련을 할 때 꼭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곧 죽는다고 생각하고 '유언장'을 써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역설적으로도 삶도 더 잘 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말하길 우리가 삶에 집착하는 이유가 '만족의 신화'에 갇혀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나 결과에 대해서 '대부분' 불만족하지만 만족한 것에 대해서 인지할 때 현실과 괴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가 유독 한국에서 기복과 축복에 의존하는 문화가 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저도 좀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제가 생각하는 '진리' 중의 하나는 - 매뉴얼 대로 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 입니다.
어줍짢은 자존심을 지키기보다는 저의 목적지를 분명하게 바라보는 겁니다.
세상에 완벽한 지도는 없을 뿐더러, 있다 해도 남의 것이고
길을 모르면 물으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헤메면 그만이다. (by 한비야)
그렇게 가다보면 저만의 지도를 만들 수 있겠지요.
남이 저의 지도를 보는 것은 선택사항일 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려는 것이,
삶에 대한 소망으로 끝나네요.
우리 모두 잘 살다가, 잘 죽어봅시다.